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니콜라스 마두로 (문단 편집) === 대통령이 되기까지 === 젊은 시절에 버스 운전사로 일했으며 버스기사 노동조합 지도자로 두각을 나타냈다. 90년대 당시 베네수엘라는 [[https://es.wikipedia.org/wiki/Década_perdida_de_América_Latina|1982년 중남미 금융위기]] 이래 지속되는 경제위기와 혼란으로 여러모로 어수선했다. 이 때 니콜라스 마두로의 부인이 [[우고 차베스]]의 변호를 맡으면서 차베스와의 인연이 생겼다. 1998년 지방선거-총선-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우고 차베스가 창당한 [[https://en.wikipedia.org/wiki/Fifth_Republic_Movement|제5공화국 운동]]에 참여했다. 1998년 총선과 대통령 선거가 민주행동당-사회기독당과 여러 중도파-우파정당들이 우고 차베스의 선전을 우려해서 총선과 대통령 선거를 따로 치르도록 했기 때문이었다. 1958년 혁명기부터 1993년 선거까지는 국회의원 총선과 대통령 선거를 같이 치르는 게 관례였다. 미스 유니버스 우승자 출신인 이레네 사에즈가 지지율을 유지했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도 있었지만 이레네 사에즈가 기독사회당의 지원을 받은 데다가 여러 의혹도 사게 되어 순식간에 지지율이 급락하는 바람에 말짱 도루묵이 된 상황이었다. 1998년에 우고 차베스가 승리하면서 동시에 정계 진출에 성공했고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측근이 되었다. 이후 2005년부터 2006년까지 국회의장을, 2006년부터 2013년까지 외교장관을 맡으면서 무난하게 정무를 보기는 했지만 장관으로써는 딱히 두드러지는 활동을 벌인 건 아니었다. 여하간 장관 경력이 있다고 꼭 유능한 대통령이 되는 건 아니라는 예시 중 하나다.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차베스가 4선에 확정된 이후 1999년 제정된 헌법에 따라 차베스는 마두로를 부통령에 임명했다. 그러나 차베스는 취임식에 참석할 수 없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면서 부통령으로 임명된 마두로가 대행을 맡게 되었다. 선거 운동에 열심히 나서는 일은 의외로 육체적으로 힘이 드는 일이다. 차베스가 일요일마다 몇 시간 동안 연설하는 것으로 유명했다지만, 암으로 이제 앞으로 몇 년 정도 살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건강을 제쳐놓고 무리하게 선거운동에 나서다가 몸을 무리하게 움직인 나머지 4선에 성공한 직후로는 회복 불능의 상태에 이르렀다. 그래서 취임식도 하지 못하고 죽었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